2007년 5월 3일 오후 3시, 박성효 대전시장은 고암 이응노(1904-1989)의 삶과 예술을 볼 수 있는 ‘이응노 미술관’을 찾았다. 대전 서구 만년동에서 개관식이 열렸다.
2005년 9월 총 57억원을 들여 착공한 이응노미술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연면적 1,650㎡로 프랑스 건축가 로랑 보두앵과 흰색 콘크리트로 지어졌습니다. 현재 박물관에는 고암의 부인 박인경(82)씨(명예원장)가 기증한 작품 200여점이 소장되어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기증을 받을 계획이다.
개관을 기념해 특별전 ‘고암의 숲을 걷다, 파리에서 대전까지’가 오는 8월 26일까지 열린다. 추상도형, 군상 등 회화, 조각, 도자 등 고암의 작품 48점이 전시된다.
이응노는 충청남도 홍성에서 해강 김규진에게 사사했고, 홍성·예산·전주를 졸업하고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홍익대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교에서 동양화과 교수를 역임했다.
1958년 파리로 이주하여 정착한 후 Character Abstraction과 Dancing Group of People 연작을 발표했다. 1967년 이른바 동백림 사건으로 투옥되었다. 그는 Galley Paul Facchetti와 같은 프랑스의 유명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박명예 박물관장은 “이화백의 고향인 홍성에서 가깝고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며 동백꽃 사건으로 대전교도소에서 복역하는 등 고암과 대전의 인연을 강조했다. 의 사람들이 이곳을 교통 허브로 방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명예 원장은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가 서양인에게 동양화의 세계를 알리고자 고암 이응로 화백과 함께 ‘동양미술학교’를 설립해 고암 사후에도 계속 이어오고 있다. . 서울 평창동에서 박명예 관장이 운영하던 이응노미술관은 2년 전 문을 닫았다. 문의 (042) 602-3270-4. 이종근 기자.
2. 이응노와 전주생활
고암이 1928년 전주에 정착했을 때 그의 나이는 스물네 살의 청년이었다. 전주시 중앙동 4가 25번지에서 ‘개철사’라는 가게를 열고 간판과 건물을 그렸다. 당시 ‘신사구락부’라는 모임도 조직했다고 한다.
그때 틈만 나면 효산에 있는 이광렬(1885-1966)의 집을 찾아갔다. 고암보다 19세 연상인 효산은 조선시대의 명필이자 사군자이자 중견 문인이었다.
고암은 효산에게 미술을 배우던 중 사적인 일로 알게 되었다. 1930년 심천에서 제3차 선전 4군자부가 선정된 후 전주가 출품한 작품으로 “풍죽(風竹)”과 “청죽(晴竹)”이 선정되었다.
1931년 제10회 전시회에서는 ‘다죽’, ‘풍죽’, ‘청죽’, ‘분죽’, ‘매화’ 등 4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단번에 선발되어 특별선발로 이왕직상을 받았다. 당시 고암은 효산의 가명으로 알려진 ‘죽사’라는 가명으로 전시했다. 전주에서 8년을 보낸 고암은 1935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본향회 서양학과에 입학했다. 이종근 기자